208년 적벽의 불길이 채 식기도 전에 오나라의 명장 주유는 유비를 경계했습니다. 만약 주유가 계획했던 대로 유비를 감금하거나 제거하는 계략이 성공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요.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는 시작도 못 하고 사라졌을 것이며 조조와 손권의 양강 구도가 훨씬 일찍 정착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유비라는 구심점을 잃은 촉한의 인재들이 보여주었을 선택과 그로 인해 완전히 뒤바뀌었을 동아시아의 지도를 구체적인 상상력으로 그려보았습니다.

왜 주유는 적벽대전 직후 유비를 죽이려 했을까?
적벽대전 승리 이후 주유가 가장 먼저 경계한 대상은 조조가 아니라 동맹군이었던 유비였습니다. 주유는 유비를 ‘잠자는 용’이 아니라 ‘언제든 주인을 물 수 있는 사나운 범’으로 보았습니다. 당시 유비는 형주 남부 4군을 장악하며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기 시작했는데 주유는 이를 오나라의 천하 통일에 가장 큰 걸림돌로 판단했습니다.
주유가 오나라 손권에게 올린 상소문을 보면 그의 의도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유비에게 화려한 저택과 미녀를 제공해 의지를 꺾고 관우와 장비를 떼어놓아 자신이 직접 부리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이것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유비는 익주로 입성할 발판을 마련했지만 만약 주유의 연금술이 성공했다면 삼국지의 판도는 근본부터 흔들렸을 것입니다.
유비 사후 관우와 장비가 선택했을 3가지 행보
유비라는 구심점이 사라진 상태에서 당대 최고의 무력을 가진 관우와 장비가 어떤 길을 걸었을지는 가장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유비에 대한 충성심이 종교적 수준이었던 그들에게는 몇 가지 현실적인 선택지가 남게 됩니다.
- 주군을 따라 자결하거나 깊은 산중에 은거하기
- 유비의 복수를 위해 일시적으로 조조에게 투항하여 오나라를 공격하기
- 주유의 강압적인 설득이나 회유에 못 이겨 오나라의 선봉장이 되기
역사적 기록에 비추어 볼 때 관우는 자부심이 강해 손권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굴욕으로 여겼을 확률이 높습니다. 반면 장비는 복수심에 불타 형주 일대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며 주유의 골칫거리가 되었을 가능성이 큼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유 유비 제거 이후 제갈량의 행방과 역할
유비가 제거되었다면 제갈량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유비의 삼고초려에 감복해 출사했기 때문에 유비가 없는 세상에서 다른 군주를 섬기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유는 제갈량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기에 그를 오나라의 참모로 흡수하려 했을 것입니다.
제갈량이 오나라의 관료가 되었다면 주유와 제갈량이라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사기급’ 지략가 조합이 탄생합니다. 이들은 형주를 온전히 오나라의 소유로 확정 짓고 곧바로 유장이 다스리던 익주를 공략했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조조의 위나라에 대항하는 남방 거대 제국이 훨씬 빠르게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분지계가 실현되는 오나라의 천하통일 방법
주유의 본래 계획은 천하삼분이 아니라 천하이분지계였습니다. 유비를 제거하고 형주와 익주를 손에 넣은 뒤 서쪽의 마초와 손을 잡고 조조를 압박하는 전략입니다.
- 형주 병력과 오나라 수군을 통합하여 장강 방어선 구축
- 익주(사천 지방)를 조기에 점령하여 풍부한 자원 확보
- 한중을 거쳐 장안으로 진격하는 북벌의 루트 단일화
이 과정에서 유비라는 변수가 사라지면 오나라는 내부적인 소모 없이 오로지 북쪽의 조조에게만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삼국 시대가 60년 넘게 지속되지 않고 훨씬 이른 시점에 결판이 나는 결과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조조가 웃었을까 위나라가 맞이한 뜻밖의 위기
유비의 제거가 조조에게 반드시 호재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유비는 조조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지만 동시에 오나라와 위나라 사이에서 힘의 균형을 맞추는 완충지대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유비가 사라지고 오나라가 서쪽의 익주까지 장악하게 되면 조조는 장대한 국경선 전체에서 손권과 맞서야 합니다. 유비 세력을 각개격파하려던 조조의 계산은 빗나가고 거대해진 오나라의 국력을 상대해야 하는 압박에 직면했을 것입니다. 특히 주유가 요절하지 않고 건재했다면 조조는 생애 가장 강력한 라이벌을 중원에서 마주하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주유의 요절이 없었다면 가능했을 역사의 가정
주유는 유비를 제거하려던 시기 즈음에 서른 중반의 나이로 요절했습니다. 하지만 유비 제거에 성공하고 승승장구하는 상황이었다면 그의 심리적 상태나 군사적 긴장감이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주유가 이끄는 오나라는 한 왕조의 복구가 아닌 손씨 가문의 새로운 제국 건설을 목표로 삼았을 것입니다. 이는 유교적 명분론에 집착하던 촉한과 달리 실질적인 강남 개발과 해상 무역의 발달로 이어져 중국의 중심이 훨씬 빠르게 남쪽으로 이동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삼국지 판도를 바꾼 주유의 계략이 남긴 의미
주유가 유비를 제거했다면 우리가 아는 삼국지의 낭만과 충의의 서사는 크게 훼손되었을 것입니다. 관우의 오관참육장이나 제갈량의 출사표 같은 감동적인 순간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겠지요. 하지만 국가 경영과 전략의 측면에서 본다면 훨씬 효율적이고 강력한 남방 정권이 탄생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주유의 냉철한 현실 감각이 성공을 거두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삼국지는 전혀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유비라는 영웅이 사라진 자리를 주유라는 천재가 어떻게 채웠을지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삼국지를 읽는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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