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학아세 – 지식인의 올바름에 돌직구를 2방 던지다

학문을 좁히고 세상에 아첨한다는 뜻을 지닌 곡학아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인의 올바름’에 돌직구를 던지는 사자성어입니다. 교양 있고 지적일 것 같은 얼굴 뒤로 슬며시 기회만 노리는 사람들이 왜곡된 학문을 내세워 권력자나 대중의 눈치를 보는 모습, 요즘도 자주 보이지 않으신가요? 이번 글에서는 곡학아세의 한자 풀이부터 그 의미, 유래와 교훈,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곱씹어봐야 할 이유를 흥미롭게 짚어봅니다.

곡학아세

곡학아세, 한 글자도 소홀히 볼 수 없는 뜻풀이

곡학아세는 각각 굽을 곡(曲), 배울 학(學), 아첨할 아(阿), 인간 세(世)로 이루어진 사자성어입니다.

  • 굽을 ‘곡’은 똑바로 펴지 못하고 일부러 비트는 모습, 곧 왜곡이나 비틀림을 뜻합니다.
  • 배울 ‘학’은 지식이나 학문, 곧 배우고 익힌 전문성을 의미하며,
  • 아첨할 ‘아’는 비위를 맞춘다거나 누군가의 마음을 얻고자 자신을 낮추는 행위입니다.
  • 인간 ‘세’는 세상, 사회 전체를 지칭하죠.

이 네 글자가 합쳐져 만드는 함축은, 원래의 배운 바를 비틀어 세상에 아부하는, 즉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배운 학문을 왜곡하여 세상의 권력이나 분위기에 편승하는 태도를 비판합니다.

곡학아세

곡학아세의 유래, 90세의 원고생이 던진 경고

곡학아세의 뿌리는 중국 한나라 시절, 경(景)제 때의 실화 고사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황제는 인재를 모으려 했고, 고령에도 직언을 잘하기로 소문난 원고생을 불러 등용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기존의 사이비 학자들이 원고생을 시기하여 ‘너무 늙었다’며 헐뜯고, 권력자에게 아첨하는 상소문을 올려 그의 등용을 막으려 했죠.

결국 원고생은 파면되었지만, 그를 만나러 온 다른 학자에게 마지막으로 충고했습니다. “말로써 곧은 학문을 실천해야지, 학문을 비틀어 세상을 아첨하지 말라.” 바로 이 장면이 곡학아세의 어원입니다.

곡학아세

현대사회에서 곡학아세가 주는 씁쓸한 교훈

곡학아세의 교훈은 고대 한나라만의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지금도 유사한 모습을 곳곳에서 마주칩니다.

  • 전문가, 교수, 연구자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거나 기업, 권력층의 입맛에 맞춰 학문을 포장할 때
  • 권위를 빌려 부정확하거나 왜곡된 지식을 언론 또는 대중매체에 퍼뜨릴 때
  • 자기 신념과 진실을 외면하고, 집단이나 조직,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 양심을 버릴 때

이럴 때 우리는 곡학아세라는 낱말을 되새기며 진짜 배움과 올바른 소신이 무엇인지, 그리고 타협이 아니라 직언과 양심이 왜 중요한지 곰곰이 생각해야 합니다.

곡학아세

곡학아세에 빠지지 않는 법, 우리 모두의 과제

세상이 바뀌고 기술이 발전해도, 지식과 전문성의 힘은 여전합니다. 문제는 이 힘이 양심을 떠나 남용되기 쉽다는 점입니다. 곡학아세를 경계한다는 건,

  • 나의 전문지식이 누구를 위해,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꾸준히 자문하는 것
  •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학문적 신념과 윤리를 지키려는 ‘고집’을 때로는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
  • 정보에 노출되는 입장에서도 쉽게 믿지 않고, 언제나 ‘근거’와 ‘의도’를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것

이 모두가 학문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삶을 바로 세우는 길입니다.

곡학아세

실생활에서 곡학아세를 마주했을 때

혹시 남의 지위를 이용하려는 지식의 남용을 본 적 있으신가요? 혹은 투명치 않은 과장이나 왜곡을 듣고도 무심히 넘긴 적 있으신가요? 그런 순간 곡학아세라는 사자성어를 한 번 외워보고 그 상황을 다르게 해석해보는 실천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실천 없는 깨달음은 공허함에 그치기 쉽습니다. 오늘 하루, 내가 직접 곡학아세의 유혹을 거부하고, 내 주변에서 그런 모습이 목격된다면 가볍게라도 한마디 의견을 보태보는 것은 어떨까요? 올곧은 소신이 모여 사회를 바꾸는 작은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곡학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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