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5년에 태어난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만약 70세의 장벽을 넘어 80대 중반까지 장수했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서양 음악사를 배웠을지도 모릅니다. 신동이라 불리던 어린 모차르트가 바흐라는 거대한 산을 직접 마주했을 때 벌어질 일들은 단순한 만남을 넘어 음악적 혁명에 가까웠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크의 엄격함과 고전주의의 화려함이 정면으로 충돌하며 빚어냈을 새로운 예술적 지평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느껴지더라고요.

바흐가 모차르트를 만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
실제 역사에서 바흐는 1750년에 세상을 떠났고 모차르트는 그로부터 6년 뒤인 1756년에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바흐가 만약 80대까지 건강을 유지했다면 1760년대 중반 런던에서 연주 여행 중이던 어린 모차르트를 충분히 만날 수 있었을 거예요. 당시 런던에는 바흐의 막내아들인 요한 크리스찬 바흐가 활동하며 어린 모차르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거든요.
아버지 바흐가 아들의 부름을 받아 런던으로 향했다면 그곳에서 8살의 천재 소년 모차르트를 대면하는 드라마틱한 장면이 연출되었을 겁니다. 바흐는 이미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받던 대위법의 대가였지만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한눈에 알아봤을 것이 분명해요. 이들의 만남은 단순히 노년의 작곡가와 어린 유망주의 인사를 넘어 음악의 문법 자체가 바뀌는 계기가 되었을 거예요.
바흐 모차르트 두 거장이 런던에서 조우하는 방법
두 사람의 만남이 성사되었다면 아마도 건반 악기 앞이 가장 유력한 장소였을 겁니다. 바흐는 자신이 완성한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을 어린 모차르트에게 직접 들려주며 음악적 구조의 엄밀함을 가르쳤을지도 모르겠어요. 모차르트는 그 복잡한 다성음악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즉석에서 변주를 선보였을 텐데 그 광경을 상상하니 입가에 미소가 번지더라고요.
- 바흐의 막내아들 요한 크리스찬의 중재로 성사된 만남
- 런던 사교계의 중심지였던 킹스 극장 인근의 저택
- 하프시코드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즉흥 연주 대결
- 바흐의 엄격한 가르침과 모차르트의 자유로운 감수성의 충돌
이 과정에서 모차르트는 기존에 배우던 갈랑 양식의 가벼움을 넘어 음악의 깊은 내면을 지탱하는 수학적 설계의 미학을 훨씬 일찍 깨달았을 것입니다.

왜 바흐의 대위법은 모차르트에게 충격이었을까
모차르트가 활동하던 시기는 선율 중심의 명쾌한 음악이 유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반면 바흐의 음악은 여러 성부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복잡한 대위법의 절정이었죠. 어린 모차르트가 바흐를 직접 만났다면 그는 음악이 단순히 즐거움을 주는 수단을 넘어 우주의 질서를 담는 그릇이라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을 거예요.
실제로 모차르트는 만년에 이르러서야 바흐의 악보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아 자신의 작품에 대위법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그 만남이 20년만 앞당겨졌다면 모차르트의 초기 교향곡들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웅장하고 치밀한 구성을 갖추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대위법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음악의 영혼을 구성하는 골격과도 같았으니까요.
모차르트 음악에 바흐의 정수가 스며들 3가지 변화
바흐와의 직접적인 교류가 있었다면 모차르트의 작품 세계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겪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 푸가 기법의 조기 완성: 모차르트의 후기 걸작인 교향곡 41번 주피터의 4악장에서나 볼 수 있었던 완벽한 푸가가 그의 10대 시절 작품부터 등장했을 것입니다.
- 종교 음악의 깊이 변화: 레퀴엠과 같은 장엄한 종교 곡들이 훨씬 일찍부터 작곡되었을 것이며 바흐의 마태 수난곡에 버금가는 철학적 깊이를 담았을 거예요.
- 건반 악기 연주법의 진화: 오르간의 대가였던 바흐의 테크닉이 모차르트에게 전수되면서 피아노 협주곡의 화성적 풍성함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을 것입니다.
이런 변화들은 서양 음악의 고전주의 시대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낭만주의 시대로의 이행을 수십 년은 앞당겼을지도 모릅니다.

고전주의 형식을 파괴했을 두 천재의 작곡 기법
바흐는 형식을 중시하는 듯 보이면서도 그 안에서 무한한 자유를 찾았던 인물입니다. 모차르트 역시 천부적인 감각으로 형식을 가지고 놀 줄 알았죠. 두 사람이 만났다면 고전주의의 전형적인 소나타 형식은 훨씬 더 복잡하고 유기적인 형태로 변모했을 겁니다. 바흐의 변주 기법과 모차르트의 극적인 전개 방식이 합쳐진 결과물은 현대의 프로그레시브 음악만큼이나 파격적이었을 거예요.
특히 오페라 분야에서 바흐의 진지한 성악 처리 방식이 모차르트의 희극적 요소와 결합했다면 지금껏 우리가 알던 오페라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예술이 탄생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가벼운 웃음 뒤에 숨겨진 인간 본연의 고뇌가 바흐식의 무거운 화성으로 표현되는 장면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더라고요. 이는 단순히 취향의 결합이 아니라 음악적 세계관의 대충돌이자 융합이었을 겁니다.
바흐와 모차르트의 합작품이 탄생했다면 어땠을까
만약 바흐가 모차르트의 재능에 감탄해 그를 위해 연습곡을 써주거나 공동으로 협주곡을 집필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그 악보는 음악 역사상 가장 비싼 가치를 지닌 보물이 되었을 겁니다. 바흐가 기초적인 베이스 라인과 대위법적 구조를 잡고 모차르트가 그 위에 화려한 선율과 장식음을 덧입히는 방식이었겠죠.
- 바흐의 논리적인 주제 전개와 모차르트의 감각적인 선율미의 조화
-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전설적인 협주곡 악보의 존재
- 스승과 제자를 넘어선 예술적 동반자로서의 서신 교환
- 후대 작곡가들에게 절대적인 성전이 되었을 합작품의 영향력
이런 상상은 단순히 허구가 아니라 음악적 개연성이 충분한 가설입니다. 두 거장의 에너지가 한곳으로 모였다면 서양 음악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정점에 훨씬 일찍 도달했을지도 모릅니다.

바흐 모차르트가 함께 꿈꿨을 음악적 미래
결국 바흐와 모차르트의 만남이 주는 가장 큰 의미는 시대와 형식을 초월한 예술적 소통에 있습니다. 바흐가 추구했던 음악의 경건함과 모차르트가 추구했던 인간적인 아름다움은 사실 한 뿌리에서 나온 다른 꽃일 뿐이니까요. 두 거장이 만나 대화를 나눴다면 그들은 서로의 음악 속에서 자신이 찾던 마지막 퍼즐 조각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바흐와 모차르트를 연달아 감상하며 느끼는 묘한 일체감은 어쩌면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지 못한 그들의 만남을 우리의 귀가 대신 완성해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비록 현실에서는 불가능했던 일이지만 이런 상상을 통해 우리는 음악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도 오늘 밤에는 바흐의 푸가와 모차르트의 소나타를 번갈아 들으며 두 천재가 나누었을 가상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 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