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의 수도 사나에 발을 들이면 마치 수천 년 전의 시간 속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진흙으로 빚어낸 초고층 빌딩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풍경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지요. 오늘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미학을 자랑하는 사나 옛 시가지의 가치와 매력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겠습니다.

사나 옛 시가지가 인류의 보물로 지정된 이유
사나는 해발 2,200m 고원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거주 도시 중 하나입니다. 2,500년 넘는 세월 동안 사람이 살아온 이곳은 1986년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지요. 103개의 모스크와 14개의 함맘(대중목욕탕), 그리고 6,000여 채의 독특한 가옥들이 어우러져 중세 이슬람 도시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오래된 건물이 많아서가 아니라, 7세기와 8세기에 이슬람교가 확산되던 시기의 도시 구조가 오늘날까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진흙으로 쌓아 올린 8층 높이의 고대 마천루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다층 구조의 수직 가옥들입니다. 현대의 철근 콘크리트 없이 오로지 진흙 벽돌과 돌만을 사용해 8층 높이까지 건물을 올렸다는 사실이 놀랍더라고요. 이 가옥들은 가족의 규모와 기능에 따라 층별로 철저히 구분되어 사용됩니다.
- 1층과 2층: 가축을 기르거나 곡물을 저장하는 창고 공간
- 3층 이상: 가족들이 거주하는 거실과 침실
- 최상층(마프라지): 손님을 맞이하고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가장 전망 좋은 방

하얀 석고 장식이 만들어낸 기하학적 문양의 비밀
사나의 건물들을 보면 갈색 진흙 벽과 대비되는 선명한 하얀색 장식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카마리야’라고 불리는 이 장식은 반원형의 창문 위에 석고로 기하학적 문양을 만들고 그 사이에 색유리나 얇은 설바닥석(Alabaster)을 끼워 넣은 형태예요. 낮에는 외부에서 보기에 아름다운 장식이 되고, 밤에 집 안에서 불을 밝히면 밖으로 은은한 빛이 새어 나와 도시 전체가 보석처럼 빛나게 됩니다. 이 문양들은 단순한 장식을 넘어 가문의 위상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왜 2,500년 동안 이 도시는 파괴되지 않았을까?
척박한 환경과 수많은 전쟁 속에서도 사나가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건축 방식에 숨어 있습니다. 진흙 벽돌은 사막 기후의 뜨거운 열기를 차단하고 밤의 냉기를 보존하는 천연 단열재 역할을 했어요. 또한 건물들이 서로 밀집해 있어 서로를 지탱해 주는 구조를 가졌고, 하단부는 단단한 돌로 기초를 다져 홍수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되었습니다.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건축 공법이 이 도시를 천년의 세월 동안 지켜온 셈입니다.

시장과 사원이 어우러진 옛 시가지 제대로 둘러보는 법
도시의 중심에는 ‘수크 알 밀(Suq al-Milh)’이라고 불리는 소금 시장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곳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을 넘어 정보가 교환되고 공동체의 결속이 이루어지는 중심지였어요. 시장 주변으로 뻗어 나가는 미로 같은 골목들을 걷다 보면 사나 대모스크(Great Mosque)와 같은 역사적인 건축물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 시장에서 전통 단검인 ‘잠비야’ 장인들의 작업 구경하기
- 길거리에서 판매하는 예멘식 커피 ‘키shr’ 맛보기
- 높은 지대의 카페에서 시가지 전체 조망하기
현재 사나를 방문할 때 반드시 주의해야 할 점
안타깝게도 현재 예멘의 정세는 그리 밝지 않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임에도 불구하고 무력 충돌과 관리 소홀로 인해 위기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 올라 있는 상태예요. 사나 옛 시가지의 가옥들은 주기적인 유지보수가 필요한데,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무너져 내리는 건물들이 늘어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합니다. 여행을 계획한다면 반드시 외교부의 안전 지침을 확인해야 하며, 현지의 보존 상태가 예전만 못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사라져가는 인류의 유산을 기억하며
사나 옛 시가지는 인간이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만들어낸 창의성의 정점입니다. 단순히 오래된 도시를 넘어,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삶의 방식이 담긴 거대한 박물관과도 같지요. 비록 지금은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 아름다운 진흙 도시가 더 이상 훼손되지 않고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언젠가 평화가 찾아와 누구나 이 신비로운 골목을 자유롭게 거닐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출처: https://whc.unesco.org/en/list/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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